minilux 160NC
쓰고 나니 어쩐지 일본어의 번역체스럽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지만,
일본 가정식을 먹으면서 느낀 것이라 그럴 수 밖에 없단 것.
엄마가 그랬다.
얘가 뭘 먹고 살런지에 대한 걱정을 늘어놓으시면서
점을 보러 가셨댔다.
"이 아이는 늘 주머니에 쓸만큼의 돈은 있어요."
아빠는 늘 새로한 윤기가 나는 고슬고슬 윤기가 나는 밥을 원했다.
묵은 쌀이 집에 들어올 때면 그 쌀을 대하는 적절한 해결책에 대해 두어문장으로 얘기했고
엄마는 그렇게 했다.
아침마다 압력솥의 찰그랑 소리와 밥내가 온 집에 진동을 했다.
14살이 되었을 무렵 엄마와 아빠의 일들이 오후에 바빠서
일주일에 3번정도는 내가 저녁 쌀을 씻고 밥을 해야했다.
쌀은 너무 박박 문지르면 안되었고,
돌과 겨를 골라내어야 했으며
쌀의 특질을 잘 파악해서 물의 정도를 조절해야했다.
밥이 다 되었을 땐 바로 열어서 밥알이 으깨지지 않게 살살 뒤집어 밥솥에 담았다.
밥이나 반찬의 간에 민감한 아빠의 입맛을 맞는 날은
100점을 받아와서 칭찬을 받았던 어느 날보다 흐뭇했다.
칭찬을 받았던 그 밥들은 윤기가 자르르 흘렀고,
갈라짐이 없었으며 노오란 쌀눈이 붙어있고,
손으로 누르면 탱글함이 느껴졌다.
그래.
그게 밥의 감동이라는거다.
별 생각없이 먹었던,
쌀밥 한공기가 지나온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
감동이라는 말로 대체된다.
넓게 너울거리는 노오한 벌판을 수도 없이 보았고,
맨발로 싹싹, 소리를 내며 벼알을 뒤집던 농번기를 지나왔다.
나는 밥의 감동을 이미 뇌 속 깊숙이 새겨두고 있었다.
청담동 깊숙히,
홍대의 hot 한 작은,
신사동의 말끔한,
어느 식당도 그러했다.
맛있다.
왜냐하면 그들에겐 스킬이 있으니.
당연한거다.
물 건너가서 일년 등록금 2-3천만원을 주고 배운 스킬에는 '맛있음'은 있어야했다.
맛이라는 것은 혀에 새기는게 아니라 기억과 생활에 새기는 것이다.
가끔이지만 난 그 탱글거리는 밥으로 아무것도 아닐것 같은 주먹밥을 만든다.
그리고 주머니 속에 차곡히 넣어두면 된다.
세상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채워지는 건 없다.
난 뭔가를 하고 있기 때문에 늘 주머니가 채워지는 것이고
겨울엔 오사카에 가고,
여름엔 시카고에 간다.